부산 지형, 특징, 부산 역사, 관광 19

전관거류지 조성과 용두산 신사

전관거류지 조성과 용두산 신사 전관거류지는 초량왜관을 대신해 설치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격은 과거 왜관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전관거류지를 통해 이웃한 나라 조선의 속살을 보았고 그 틈을 조금씩 벌려가며 결국은 식민지 지배라는 날카로운 칼을 찔러 넣었습니다. 자, 100년 전 새롭게 만들어진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살펴보러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1876년 일본과 체결한 병자 수호 조규에서 부산을 비롯한 3개의 개항장을 설치하고 그곳에 일본의 전관거류지를 설치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과거 부산에 존재했던 왜관은 외교, 통상을 위한 임시숙소였습니다. 하지만 1877년 동래부사와 일본 관리 사이에 약정한 부산항 일본 거류지 관리 조약을 통해 조선의 국가권력을 무시하면서 치외법권을 ..

일제강점기 수탈과 수출의 간극, 우암동 소막 마을

일제강점기 수탈과 수출의 간극, 우암동 소막 마을 표민 수수 소가 있었던 우암동은 부산이 수행하던 대일본 외교의 여러 모습 중 격리를 상징했습니다. 비록 선린과 우호의 기치 아래 서로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호의를 베풀었던 양국이었지만 표민 수수 소의 예처럼 교린의 아래에는 서로를 향한 감시와 의심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곧 왜관과 표민 수수 소가 담고 있는 격리라는 성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암동은 수용과 격리로 중복되었던 부산의 근현대사를 축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구불구불 골목들로 이어진 우암동의 그때 그 시간으로 함께 걸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우암동에 표민 수수 소가 존재했음은 앞선 강의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를 담당했던 동래부에서는 이처럼 표류하여 조선에..

근대의 확장과 잠식, 부산 부청과 미나카이 백화점

근대의 확장과 잠식, 부산 부청과 미나카이 백화점 제국주의 일본은 전관거류지를 시작으로 점차 부산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영사관, 이사청, 부산 부청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일본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부산의 여러 공간들을 장악하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산의 얼굴을 자신들의 고향, 그 어느 도시보다 일본과 같은 곳으로 만들어 놓아 버렸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 말입니다. 1910년 강제병합과 함께 조선총독부 지방관 관제가 공포되면서 전국이 13도, 12부, 317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12부 중 이사 청과 거류민단이 있는 지역의 부윤은 반드시 일본인이 임명되었습니다. 1920년대 총독부는 과거 조선의 전통 고을인 군에 위치했..

근대의 관광과 유흥, 동래온천과 전차, 서면경마장

근대의 관광과 유흥, 동래온천과 전차, 서면 경마장 과거 동래는 부산지역의 중심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전관거류지의 조성과 일본인들의 대거 이주로 부산지역의 중심은 동래에서 부산포로 이동해 갔으며 과거 중심이었던 동래는 자연스레 교외가 되고 외곽이었던 부산포는 갑작스레 중심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원도심이 그냥 도심이자 중심이었을 때, 중심의 일본인들은 유흥을 찾아 외곽인 동래온천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 그런 그들을 외곽으로 실어준 것은 문명의 상징인 철도와 기차였습니다. 동래온천은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및 여러 문인들의 기록에 그 역사와 효능이 다수 남아있을 만큼 유명했습니다. 특히 왕실의 종친들은 물론이고 왜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조차 동래온천을 방문한 기록이 현재 남아있습니다. 동래온천 ..

부산의 소득과 소비

부산의 소득과 소비 부산의 소득과 소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 분석 결과, 최근 부산의 1인당 개인소득은 울산과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높았습니다. 그동안 부산은 저생산·저성장 도시 이미지가 있었으나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부산은 소득과 소비가 동시에 높은 '잘 사는 도시' 유형으로 변화하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특히 부산 인근 도시와 연결된 빠르고 편리한 교통망 확대와 기장, 해운대의 대규모 쇼핑센터, 유통시설 건설 등이 인근 도시의 주민이 부산으로 와서 소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관광 다음은 부산의 관광입니다. 부산은 매년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입니다. 2018년 상반기 부산 방문 관광객은 내국인 1,236만 명, 외국인 1..

부산의 지명과 볼거리(바닷길, 산길)

부산의 지명과 볼거리(바닷길, 산길) 부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방문을 합니다. 이런 분들이 부산에 머무르는 동안 일상의 여유와 재미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이번 강좌를 준비해보았습니다. 부산은 각 지역마다 역사적으로 또는 지리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장소들이 많아서 이 시간에 모두 소개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두 가지, 바닷길과 산길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부산의 바닷길 그럼 먼저 부산의 바닷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의 지리적 특징을 살펴보자면, 부산은 마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는 부산의 동쪽은 동해 바다와 인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남해바다와 인접하고 있습니다. 서쪽은..

의미 있는 부산의 장소(한국전쟁, 감천문화마을, 보수동)

의미 있는 부산의 장소(한국전쟁, 감천문화마을, 보수동) 아름다운 바다와 산 그리고 화려한, 더 나아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부산, 부산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소중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타지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고향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부산의 의미는 다양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해에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찾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마음속에 부산을 담아갑니다. 부산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 어떤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까? 아직 부산을 방문하지 못하신 분들은 부산에 방문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까? 부산의 어느 곳을 찾고 싶으신가요? 경치가 아름다운 곳, 쇼핑하기 편리한 곳, 재미있는 곳, 아마 여러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의미 있..

부산사람의 기질과 특성

부산사람의 기질과 특성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바로 지구입니다. 지구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기후와 환경으로 인하여 지역마다 나타나는 문화 역시 다릅니다. 지역적 특색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성향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대대로 이어온 전통과 역사에 따라 특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뚜렷한 지역적 특징이나 성향이 나타나게 됩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수용성이 강한 항구도시와 피난 도시라는 특징으로 외부 문화의 유입이 많아 고유 정체성이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부산은 그 나름의 부산이 갖는 독특한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문화와 외부의 문화들이 만나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

부산 명칭의 역사

부산 명칭의 역사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부산 지명의 유래는 무엇인가, 부산의 도심지 발전은 어떠한가, 부산의 산업구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중기에 문신 류성룡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과 사실을 기록한 책, 바로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에 의하면 “1592년 4월 15일, 조선을 침공한 왜군이 동래로 쳐들어갔을 때 부산 송상현이 분전하다 죽었다.”라고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부산'이 아니라 '동래'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이라고 하지 않고 왜 '동래'라고 한 이유가 있을까요? 현재 부산의 행정구역은 동래구가 있습니다. 그럼 동래구가 부산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지역일까요? 놀랍게도 부산의 동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