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거류지 조성과 용두산 신사 전관거류지는 초량왜관을 대신해 설치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격은 과거 왜관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전관거류지를 통해 이웃한 나라 조선의 속살을 보았고 그 틈을 조금씩 벌려가며 결국은 식민지 지배라는 날카로운 칼을 찔러 넣었습니다. 자, 100년 전 새롭게 만들어진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살펴보러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1876년 일본과 체결한 병자 수호 조규에서 부산을 비롯한 3개의 개항장을 설치하고 그곳에 일본의 전관거류지를 설치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과거 부산에 존재했던 왜관은 외교, 통상을 위한 임시숙소였습니다. 하지만 1877년 동래부사와 일본 관리 사이에 약정한 부산항 일본 거류지 관리 조약을 통해 조선의 국가권력을 무시하면서 치외법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