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명칭의 역사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부산 지명의 유래는 무엇인가, 부산의 도심지 발전은 어떠한가, 부산의 산업구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중기에 문신 류성룡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과 사실을 기록한 책, 바로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에 의하면 “1592년 4월 15일, 조선을 침공한 왜군이 동래로 쳐들어갔을 때 부산 송상현이 분전하다 죽었다.”라고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부산'이 아니라 '동래'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이라고 하지 않고 왜 '동래'라고 한 이유가 있을까요? 현재 부산의 행정구역은 동래구가 있습니다. 그럼 동래구가 부산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지역일까요? 놀랍게도 부산의 동래구는 바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부산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부산에는 동래산성, 동래학춤, 동래야류, 동래고무, 동래 지신밟기 등 '동래'라는 이름이 들어간 유, 무형문화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동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은 동래구가 부산에 16개 구, 군 중에 하나의 행정구역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동래가 곧 부산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을 보면 지금 부산광역시라고 불리는 일대의 명칭이 동래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부산이라는 명칭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지금부터 부산의 명칭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이란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402년 〈태종실록〉에 '부산'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입니다.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경상 도속찬 지리지〉 등에 동래 부산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산이라는 말을 풀어서 보면,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의 산'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로 가마뫼라고 합니다. 아직도 부산의 일부 단체명이나 상호명으로 가마뫼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일대의 지명의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8세기, 즉 삼국시대에는 양주 동래군이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경상도 동래군이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경상도 울주군과 양주군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16세기 조선시대에 경상도 동래부라고 불려졌는데, 정확한 명칭은 동래 도호부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개항장이었던 부산포 일대는 일본 선박이 오가는 거점 지역으로 급성장하게 되면서 부산부로 영역이 확대됩니다. 현재 지도상으로 부산시에 소재하는 동래 동구, 중구, 서구, 영도구 일대가 과거에 부산 부였습니다. 일제는 행정적 지배를 위해서 부산 부청을 설치하였습니다. 이후 해방을 맞은 이후에도 부산부의 영역은 더욱더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경상남도 부산부로 불리다가 1949년 경상남도 부산시로 변경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1963년, 정부 직할의 부산시로 승격을 하게 됩니다. 이후 1981년, 부산시를 부산직할시로 개칭을 하였습니다. 참고로 부산이 대한민국 최초의 직할시이면서 광역시입니다. 부산광역시라는 명칭은 1995년에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더불어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산 표기
부산 표기에 대해서 더욱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부산을 한자로 표기하면 '가마 부(釜)'에 '뫼 산(山)' 자로 표기를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1402년 〈태종실록〉에는 '가멸 부(富)'와 '뫼 산(山)' 자로 표기도 되어 있습니다. '가멸 부'라는 자는 '재물이 많고 넉넉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주로 '가멸'가멸 부'로 부산의 한자를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1474년, 〈성종실록〉에 처음 '가마 부' 자를 사용한 기록이 나옵니다. '가마 부' 자는 앞서 설명을 한 것처럼 가마솥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이후 한동안 '가마 부' 자와 '가멸 부' 자가 혼용되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1481년, 〈동국여지승람〉 이후부터는 '가마 부' 자를 쓰는 부산으로 정착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산을 영문으로 표기하면 Busan입니다. 하지만 2000년 이전에는 B가 아닌 P로 시작되는 Pusan으로 표기를 하였습니다. 1997년, 국립국어연구원의 시안에 따라 2000년 정부가 고시한 로마자 표기법에 의하여 부산의 영문 표기는 Pusan이 아닌 Busan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에도 한동안 Busan과 Pusan이 혼용되다가 지금의 Busan으로 표기가 안착이 되었습니다. 한 예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약칭이 지금은 BIFF에서 2010년 이전에는 PIFF로 영문 표기를 했습니다. 국제영화제 당시 행사 이름은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인데, 부산의 안내표지판들이 Pusan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거나 부산의 다른 행사 이름에는 Busan으로 영문 표기를 한 사례가 있어 일부 외국인들이 두 개의 도시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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