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수탈과 수출의 간극, 우암동 소막 마을 표민 수수 소가 있었던 우암동은 부산이 수행하던 대일본 외교의 여러 모습 중 격리를 상징했습니다. 비록 선린과 우호의 기치 아래 서로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호의를 베풀었던 양국이었지만 표민 수수 소의 예처럼 교린의 아래에는 서로를 향한 감시와 의심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곧 왜관과 표민 수수 소가 담고 있는 격리라는 성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암동은 수용과 격리로 중복되었던 부산의 근현대사를 축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구불구불 골목들로 이어진 우암동의 그때 그 시간으로 함께 걸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우암동에 표민 수수 소가 존재했음은 앞선 강의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를 담당했던 동래부에서는 이처럼 표류하여 조선에..